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 후에 외국 여행을 여러번 다녀 왔을 겁니다 만,
여행은 즐겁고 유익한 것이여서
여행 할 때의 즐거움을 다시 되 살린다는 뜻에서
여행 하면서 열심히 찍은 사진을 정리 하고
자료를 찾아서 간단히 사진 설명을 해 보았습니다.
사진 분량이 많아 사진 규격이 작아서 보시기에 불편 하시겠지 만,
역사와 지리 공부를 다시 해 본다는 뜻에서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빠짐없이 천천히 자세하게 보십시요.


로마 제국 건국 시조
로마 건국 神話에는 군사 전쟁 神 마르스와 人間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레무스"와 "로물루스"가 원치 않은 아이란 이유로
테베레강에 버려진 것을 늑대가 발견하여 파라치노 언덕 근처 동굴에 데려가
늑대가 자기 젖을 먹이며 키웠으며 그후 "로물루스"가 성장하여
기원전 753년에 도시 국가 로마 제국을 건국 하였다는 전설.

<콘세르 바토리 궁의 박물관내 늑대상> <캄피톨리 광장의 늑대상>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
-박물관에 있는 늑대상은 기원후 15세기경 조각가 "포라이오로"가 제작.

<로마 건국 신화의 동굴 내부>
-늑대가 쌍둥이 형제를 키웠다는 그 동굴이 2,700년 후인 요즘 발견 되었다.
-이 동굴은 "아우구스투구" 황제의 황궁터 복원 과정에서 지하 16m 지점에서
발견 되었으며 지름 8m, 높이 7.5m인 이 동굴을 영구 보전하기 위해
고대 로마제국 시절에 황제의 지시로 내벽 전체를 조개 껍데기와
색색의 대리석 모자이크로 장식 하였다.

로마 고대 유적지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
-원래 호리비오 원형극장이라 명명 되었든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은 서기 72년
"베수파시아누스"황제 때 포로 노예 4만명을 동원, 공사를 시작하여 8년후 아들
"티투스"황제 때 완성 하였다.
-직경 긴쪽 188m, 짧은쪽 156m, 높이 48m, 둘레 527m의 타원형 구조로
5만명을 수용할수 있었다.
-이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의 격투 시합장으로 또는 맹수들의 사냥 시합을 벌였고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자밥이 되는 순교의 성지이기도 하였다.
* 세계 신 불가사의로 선정

<콜로세움 전경>

<코로세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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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로마시대 개선문중 규모가 가장 크고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 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서기 315년에 건립 하였다.
-높이 21m. 너비 25m로 세개의 아취문과 코린트 양식 기둥으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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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게세 박물관에 소장된 콜로세움 경기장에서의 검투사들의 격투 장면과 맹수 사냥 장면이 그려진 3세기 시절의 모자이크화.

<로마 공회장 (포로 로마노)>
-기원전 78년 로마제국 시대 집정관 "슬라"에 의해 축조 되기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신전, 개선문, 궁전, 기념비 공회당 등이 증축 되었다.
-이 공회장 내에는 원로원, 세베루스황제의 개선문, 포카황제의 기념 원주, 사트르노 신전,
안토니우스와 화우스티나의 신전, 줄리우스 씨저의 신전, 베스타 신전,
비너스 신전, 카스토로와 폴록스 신전, 티투스황제 개선문,
황제들의 궁전 건물과 멀리 코로세움이 있었으나 거의 폐허화 되었다.
-이 곳에서 원로원 회의, 시민회의, 집정관 선출, 행정 종교 예식을 거행한 장소이다.

< 폐허가 된 현제의 모습> <로마 당시의 상상 복원도>

<폐허가 된 사트르노 신전과 야경 모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안토니우스와 화우스 티나 신전>

<비너스 신전>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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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티투스황제가 예루살램 정복 기념으로 건립 -내부 벽에 황제의 개선 행렬 부고가 조각 되여 있다.
<로마 제국의 유명한 조각상>



<치르코 막시모 (대 경마장)>
-로마제국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경마장으로서 약 30만명의 관중을 수용하고
2두전차, 4두전차의 경주장 이며 기독교 신자들의 순교장 이기도 하였다.
(영화 "벤허"의 4두 경마 시합을 생각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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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마장의 현제 모습> <로마시대의 대경마장 상상도>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도여 있는 2두전차> <대경마장에서 기독교인들의 순교장면 벽화>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는 "니콜라 살비"에 의해 서기 1732년에 착수,1762년에 완공한 분수 연못이다.
-"처녀의 샘"이라고도 불리는데 예전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들에게 한 처녀가
샘을 알려 주고 물을 떠 주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가면 다시 로마에 돌아 올수 있다는 전설 때문에 관광객들이
분수를 등지고 뒤로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즐거운 관경이 매일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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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
-로마인의 활기와 생동감 넘치는 예술의 거리로 "베르니니" 작품인 "4대강의 분수"가
중심부에 있고
-바로 앞에 "아고네의 성 아네세 성당"과 16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마다마 궁"
(현제는 상원으로 사용)과
바로 옆에 "사피엔사 궁"(지금은 로마대학 본부로 사용)이 있다


<넵툰 분수> <4대강 분수>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은 2~3세기 이전 부터 로마 관광의 중심지라 할수 있으며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바이론, 리스트, 괴테, 안젤리카 카우후만, 스탕달, 발작크, 안델센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이 광장 주변 집에서 기거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광장의 계단>

<계단에서 바이오린 연주 거리악사> <조각배 분수-베르니니 작품> <히피 장사꾼>

<기타 유적지>

-서기120년 "하드리아"황제가 재건축 -보아리오 공회장에 있는 신전

-기원전 70~80년에 지어 진 건물
-로마시대의 유적 중 그리스 양식 건물로 비교적 보존이 잘된 건물

-로마 시대 건축중 유일하게 전해 오는 극장. -왕국시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왕의 건물
-13,000명 수용 가능. 2층 건물로 41개 아취. - 1885년~1911년 건축.흰색의 석회석 건물.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 자리. -16세기경부터 교황의 하계 별장이 였으나
-국립군인박물관과 예술박물관으로 사용. 이탈리아 왕궁에서 지금은 대통령 직무실.

-로마 델라 베리타 광장 한켠에 있는 코스메딘의 성모 마리아 성당의 현관 입구에
있는 이 거대한 원형의 석상은 원래 기원전 4세기경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 한것.
-거짓 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짤린다는 전설이 있다.

<카타콤베 지하 공동 묘지>
-기독교인의 비밀 예배장소 였으나 1세기 부터 4세기 까지 묘지로 사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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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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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버스가 오면 관광객에 안경과 허리띠를 파는 흑인 장사꾼
-자유의 여신상 복장을 하고서 깡통을 앞에 놓고 동냥을 구걸하는 로마인.
-유적지 앞에서 관광객을 태우고져 대기하고 있는 마차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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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도 유적지 앞에서 거리의 화가들이 많다. - 풍선을 파는 등 뒷골목 시장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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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관광중에 잠시 쉬는 아가씨들과 털보 아저씨. -더위와 갈증에는 참을수가 없다.
바티칸시국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시국은 면적 12만평의 아주 작은 독립 종교 국가이다.
-전세계 80개 국가와 대사를 교환하고 있는 카톨릭의 총 본산인 교황청이 있다.

<고풍스러운 로마 시가지 일부>
-멀리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보인다.

<성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성당" 건물 앞에 있는 "성 베드로 광장"은 좌우 양쪽으로 큰 반원을 이루고 있는
폭 240m의 타원형꼴 광장이며 약 30만명을 수용할수 있다.
-이 광장은 좌우로 반원을 이룬 284개의 원주 기둥과 88개의 각주 기둥이 4열 종대로
양쪽 열주회랑의 테라스를 받치고 그 위에 142 성인의 대리석상이 있다.
-이 광장은 서기 1506년 교황"율리우스 2세"에 의해 착수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교황 "알렉산드 7세"의 명에 의해 서기 1655년에서 1667년 사이의 짧은 시기에
"베르니니"가 설계하여 건설 하였다.
-교황의 교회로 쓰이는 중요 순례지이며 교황 강복식이 거행되는 매주 일요일 정오에는
많은 로마 시민들과 각 국 지역에서 모여든 교인과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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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 성당>
-서기 326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황제 시절에 "성 베드로" 무덤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당은 교황 "시베스트 1세'에 의하여 축성 되었으나
-약 1,20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낡게 되자 현제 성당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하여 서기 1506년 착공하여 120년간의 긴 세월 동안 르네상스의
기라성 같은 건축가와 예술가 들이 참여하여 서기1626년 에 완공하였다.
-서기 1546년에 교황 "바오로 3세"는 71세의 노장 "미켈란젤로"를 건축 공사 책임자로
임명하니 천부적 재질을 발휘하여 온 정성을 기울여 완공하였다.
-지금과 같이 않은 당시에 석재로만 이정도의 높은 건물을 웅장하고 섬세하게
건축 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성당 내부 전경>
-성당의 길이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들어가는 현관을 포함하여 212m 이고
천정 높이는 45.5m 이며 입석시 약 6만명을 수용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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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돔 내부>
-성당 돔 높이는 136m 로서 성당 돔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이 돔 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수가 없다고 한다.
-꼭대기는 십자가가 세워 있으나 내부 꼭대기 천정에는 4대 복음 모자이크
초상이 그려져 있다.
-당시, 이 높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였다니 도져히 믿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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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소성당 내부>
-대성당 본 제단 왼쪽에 화려한 "성체의 소성당"이 자리 하고 있다.
-소성당 제단 뒤 벽에는 유일한 유화인 "피에트로 다 꼬르또냐"의 작품인
"삼위 일체"의 그림이 있다.

<피에타 조각상>
-대성당 내부 오른쪽에 "미켈란젤로"가 24세 젊은 시절의 대표작인 "피에타" 상이 있다.
-두 인물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완벽한 조화와 균형미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성모 마리아" 가슴 부위 옷에 유일하게 자기 싸인을 남긴 작품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성스러운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걸작품이다.

<시스틴 소성당의 천정화>
-"미켈란젤로"는 교황"율리우스"와의 불화로 작품 활동을 포기하였으나 "교황의 간곡한
슬득으로 다시 로마로 돌아와 뜻밖에 "시스틴 소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라는 명을
받았으나 몇번의 사양 끝에 착수 한 것이 불후의 대작을 남기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서기 1508년 5월10일에 대 작업에 착수하여 끈질긴 정열과 왕성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4년 5개월이 지난 서기 1512년 10월 30일에 마침내
800평방미터에 달하는 큰 공간을 장식한 대작을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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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화 전경> <최후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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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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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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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중의 "크리스도"> <"최후의 심판"중의 "미켈란젤로"자화상>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은 서기 852년 교황"레오 4세"가 "사라센"의 침략후 축성한 레오네 성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으며 정문 위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대리석상이 조각되여 있다.
-이 정문을 통하여 입장하면 박물관은 물론 미술관과 "시스틴"성당과 "성 베드로"대성당을
관람 할수 있어 아침 일찍 부터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박물관 입구 정문과 레오네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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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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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방 중의 하나인 서명의방에 그려진 벽화 "성사에 대한 토론"과 "아테네 학파">
-"라파엘로"가 25세의 나이에 교황"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고 3년 만인
서기 1508년~1511년에 그린 벽화이다.

<"라오콘"상> <"벨베데레의 아폴로"상>
-기원전 1세기때 "아젠산드로스"의 작품 -기원전 6세기때 "레오카레스"의 작품

<바티칸 미술관>
-교황 "비오 11세"가 건물을 설립하였으며 15개 전시실에
고대 부터 1700년대 까지의 작품이 소장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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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내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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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나의 석관과 콘스탄티나의 석관>

폼 페 이
-서기 79년 8월 24일. 갑자기 일어난 치명적인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엄청난
화산재와 용암이 분출하여 도시 전체를 덮어 버리는 바람에, 그때까지
평화롭고 풍요하였든 도시국가 "폼페이"는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고 말았다.
-"폼페이" 도시의 건물, 시설물과 주민들은 거의가 화산재 밑에 파묻힌 채 사람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1,600년 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서기 1748년. 한 농부가 밭에서 일하다가 청동과 대리석 조각을 발견한 이후 부터
"폼페이"에서는 보물 찾기의 발굴이 무질서하게 시작 되어
귀중한 유적과 보물이 많이 훼손 되어었다.
-서기 1860년 부터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발굴이 진행되어 현제까지 약 5분의 3이
발굴 되었으며 지금도 발굴 작업은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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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의 전경>
-도시의 뒤에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화산이다.
<폼 페 이 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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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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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거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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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남아 있는 신전건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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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비 된 시가지 도로>
-봄페이 시가지는 도로 뿐 아니라 상수도, 하수도가 현대의 기술 못지 않게 발달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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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양식은 돔,기둥,아취,벽돌집,벽화,조각이 유행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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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광장(포럼) 주변의 포르티코(주랑 현관)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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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성역과 제단의 잔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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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중심지에 위치한 공중목욕탕>
-목욕탕 내부는 남녀탕이 구분 되여 있고 욕실 바닥은 이중 구조로 건축하여
증기로 일정 온도를 유지 하도록 되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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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청동상> <파우니 청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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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재로 덮인 시체가 오랜 세월 동안 석고 조각상 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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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벽화>
-폼페이의 벽화는 독특한 색채의 프레스코화 기법으로 현대의 기술로도 복원이 어렵다.
-벽화에서 보듯이 집집 마다 애로 춘화도를 그려 놓고서 무질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시민들 이므로 신의 저주를 받아 화산 폭발로 인해 멸망 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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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매를 맞는 무희> <결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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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벽에 그려진 에로틱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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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집 입구 벽에 자신의 남근의 무게를 달고 있는 모습 벽화와 남자 전신 대리석상>

<나폴리 항구와 쏘렌토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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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포리항구>

-나폴리 항구의 뚱뽀 생선장수와 토산품을 파는 뚱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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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렌토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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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향하여 소리치는 창녀촌 여인들과 쏘랜토 항구의 어시장 풍경

<피사의 사탑>
-이탈리아 소도시 피사의 "두오모"성당 종탑이다.
-이 종탑은 사라센 제국과의 전승을 기념 하기 위해 "보난도 피사노"가 건축 하였다.
-서기 1173년에 착공하여 무려 176년이 걸려 완성된 로마네 양식의 8층 대리석 탑으로
294개의 계단으로 되여 있고 탑의 높이는 55.8m, 지름 6m의 원형 탑이다.
-매년 1mm씩 기울어져 현제의 기울기 각도는 약 5.5도 이다.
-갈릴레오 갈리레이의 낙하 시험을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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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도시>
-이탈리아 북부지방 최대의 산업 경제 도시이다.
-부유하고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이탈리아 제2의 도시이다.
-파리를 제치고 세계적인 패션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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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도시 전경> <대성당-성당의 높이: 157m. 너비:92m>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 양식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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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 극장-1778년에 건립한 오페라극장> <갈레리아-유명한 브랜드 쇼핑몰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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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시가지> <기마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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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忙 中 閑>

베네치아=베니스
-이탈리아 북부지방 지중해 연안에 있는 177개의 운하, 118개의 섬,그 사이를 400개의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 물 위에 떠 있는 운하와 바다의도시.
-로마 시대의 베네치아 도시국가의 수도이며 현제는 세계의 관광지이고 차없는 도시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베니스"가 영국식 발음이고 원명은 "베네치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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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도시의 중심부인 "성 마르코"광장과 그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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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광장> <시계종탑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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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제일 큰 종과 종탑이 있고 비둘기로 유명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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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안의 비둘기 놀이>

<광장의 아이들과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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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대성당 전경>
-서기 832년에 복음서의 저자 "성 마르코"에게 바쳐진 교회이다
-그후 민중의 반란으로 파괴 되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 최고 집정관인 "도제"의
후계자 "피에트로"에 의해 재건축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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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제단화> <중앙 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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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화> <원로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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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소 광장> <외부 카페-시원한 맥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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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칼레궁 전경> <두칼레궁 내부>
-서기 920년대에 세워졌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이 궁으로 건축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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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건물의 코너 기둥과 일반 기둥>
-기둥 마다 섬세한 조각품으로 되어 있는데 코너 기둥은 "아담과 이브"의
조각이고 일반 기둥은 "정의의 상" 조각 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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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칼레궁 평의회 부속실의 벽화>
-서기 1577년 화가 "이야코포 틴토레토"가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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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전설적 예기로 유명한 "탄식의 다리">
-이다리의 왼쪽 재판소에서 오른쪽 감옥으로 건너 간 죄수는 두번 다시 돌아 오지 않었다.
-재판소 건물은 깨끗하게 정비 되었지만 오른쪽 감옥 건물은 검게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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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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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와 수상 건물>
-부드러운 파스텔 칼라의 베네치아 도시 전경이 그림 처럼 가볍게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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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잠겨 있는 건물이지 만 수백년이 경과 해도 튼튼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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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 다리 근처의 재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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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기다리는 많은 곤돌라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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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곤돌라에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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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죠르죠 마조레 성당> <성 마리아 성당과 세관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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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아 성당 앞을 지나는 수상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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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다리와 수상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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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길이 3.8km의 대운하 "카날그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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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상의 여인들> <춤을 추는 젊은이들> <어린 카톨릭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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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 관광 온 각양 각색의 이탈리아 여인들>
셑 무비/폴 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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